대곡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20180610)지혜롭게 판단하고 절박하게 결단하고(막 10장 46-52절)

청명하늘 2018. 9. 3. 19:51

지혜롭게 판단하고 절박하게 결단하고

 

성경: 마가복음 1046-52(73)

찬송: 524(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313), 542(구주 예수 의지함이; 340)

설교: 2018061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것 중에, 정읍과 임실에 걸쳐 있는 옥정호라는 곳에 사는 할머니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즘은 도로가 발달해서, 여기저기를 오가는 게 어렵지 않지만, 몇 십년 전에는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조각배를 이용해 도로까지 나가서,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분들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조각배를 타고 차가 다니는 도로까지 다녀야 했던 때의 일을 한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가을에 집에서 수확한 감을 전주에 있는 시장에 나가서 팔곤 했는데, 배를 타고 나가고, 또 차를 타고 시장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새벽 일찍 출발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도 감을 많이 수확해서, 작은 배에 가득 채워서 출발했는데, 그날 따라 안개가 너무 짙게 끼었습니다. 댐이나 호수에는 물이 많기 때문에 안개가 많이 끼고, 또 짙게 끼죠? 호수가 있으니 자주 안개가 끼지만, 그날은 더 그랬나 봅니다. 그래도 감을 내다 팔아야 하니, 심한 안개에도 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끼면 방향을 못 찾습니다. 요즘 기술이 발달해서, 여러 장비를 가지고 있어도 쉽지 않은데, 조각배니 그런 시설도 전혀 안 되어 있고, 게다가 당시는 요즘처럼 스마트폰 같은 장비도 없어서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냥 습관에 따라 방향을 정하고, 배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곧게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몸과 감각이라는 게 절대 정확하지 않습니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어떤 때는 그것이 크게 보이고, 또 어떤 때는 유독 작아 보이기도 합니다. 같은 냄새를 맡더라도, 어떤 때는 그것이 기분을 좋게 해 주는 좋은 냄새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떤 때는 그것이 역하고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소음처럼 듣기 싫고 귀찮게 들리다가도, 어느 때는 그것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는 소리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즘 많이 활용되는 소리들 중 하나가, ASMR (자율 감4각 쾌락 반응,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통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ASMR이라고 하는 것은, 일부로 작은 소음을 만들어서 이용합니다. 예를 들면, 비닐봉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만들고, 종이를 자르는 소리, 가볍게 긁는 소리 등을 만듭니다. 이런 소리를 작게 만들면, 오히려 마음이 안정되고, 스트레스가 풀리고, 잠이 잘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용되는 소리는, 보통은 듣기 좋은 소리로 여겨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무엇을 만지고, 바스락거리고, 서걱거리며 잘리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귀찮고 싫은 소리로 여겨지던 것이, 또 어떤 때는 도움이 되고, 마음에 안정을 주는 소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감각이 이렇게 부정확하기 때문에, 안개에 갇히면, 아무리 방향을 정하고 반듯하게 나아가려고 해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래서 시장에 가지고 가서 팔 감을 잔뜩 실은 분들이, 짙은 안개 때문에 방향을 찾지 못 해서, 몇 시간 동안 호수 이곳저곳으로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참을 노를 저어 어느 지점에 도착하면, 엉뚱한 곳이고, 그래서 다시 방향을 바꿔서 노를 저어 도착해 봐도 다른 곳이라서, 그렇게 점심 넘는 시간까지 노를 저어 여기저기를 다니며 고생했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제대로 정하고, 그리고 목표한 곳을 향해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잘못 정하면, 아무리 수고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목표한 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시장을 가려면, 차를 탈 수 있는 도로로 목적을 정해야지, 도로가 없는 곳으로 향하면, 아무리 많은 시간, 수고를 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또 목표한 곳을 향해 바르게 나아가는 것도, 방향을 바르게 정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좋은 방향, 옳은 방향을 정했다 하더라도, 그곳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지 못 하면, 역시 원하는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방향을 바르게 정했더라도, 목적한 방향이 어디인지,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를 모르고, 그저 습관에 따라 힘쓰면 된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지금까지 각자 살아온 삶의 길이와 방향이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삶을 돌아보면, 우리의 판단과 계산이 얼마나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는지 압니다.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어디에 좋다는 이야기만 들으면, 그것을 준비해서 이용하려 얼마나 많은 신경을 쓰고 노력합니까? 그런데 그렇게 평생 노력한 사람들은 모두 반드시 건강하고 오래 삽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돈에만 관심이 많고,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은, 돈 벌 수 있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힘쓰고 노력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남을 속이거나, 피해를 주고서라도, 자기 뱃속을 채우려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돈에 집착하며, 돈을 향해 계속 나아가면 모두 돈을 잘 법니까?

 

뿐만 아니라, 건강과 돈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 중에, 건강하고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아갑니까? 삶에 만족하며 기쁘게 살아갑니까?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의 현재 상태는 제대로 안 알려졌지만, 식물인간처럼 산다는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돈은 많이 벌었고, 좋은 것 맘껏 먹고, 하고 싶은 것 대부분을 할 수 있었지만, 과연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는 답을 얻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의 삶에서, 나아가야 하는 바른 방향을 정하고, 그곳을 향해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어려운 상황에서 바른 목표를 정하고, 그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음으로써 삶이 회복되고,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 그리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에 여리고라는 지역에 들리셨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을 마치고, 본래 목표하셨던 예루살렘으로 길을 떠나시려 할 때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앞을 못 보는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도와 달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부르고, 도와 달라고 소리친 까닭은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의 도우심으로, 바디매오는 가장 큰 아픔과 어려움이었던 눈을 뜰 수 있었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바디매오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몇 가지 표현들만으로 어떤 형편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46절에서 바디매오를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디매오의 아들이고, 맹인이고, 거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이 사람이 길 가에 앉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짧은 소개를 통해서도, 바디매오의 궁핍하고도 소망이 없는 삶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의 아버지를 기록한 까닭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아버지가 죽었든, 살아 있었든, 확실한 것은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 있고, 또 아버지의 형편이 괜찮았다면, 자신의 아들이 구걸하며 살게 놔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생각이 언제나 죄를 향해 있고, 언제나 악하다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악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나마 가장 온전하고 깨끗하게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하는 관계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입니다. 변치 않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앞을 못 보는 바디매오가 길에서 구걸하고 있었다면, 아들을 도울 만한 아버지 디매오가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디매오에게도 아들을 도울 만한 힘과 여력이 안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기에, 마땅히 가족으로부터 사랑과 보호를 받아야 했던 바디매오였지만, 가족들로부터 아무것도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뜻입니다. 경제적인 지원도 받지 못 했고, 사랑과 보호와 관심마저 받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에 대해 거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기에, 남의 도움을 통해 내 삶을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기의 삶을 자기 스스로 결정하지 못 하고, 남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구걸하지 않으면 살 수 없어서 그렇지, 얼마나 무시를 당하며, 얼마나 비굴해져야 했겠습니까?

 

게다가 바디매오는 앞을 못 보는 맹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것 한 가지면, 그 삶의 여정들을 어렵지 않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 장애에 대한 인식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이것도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에는 장애인들에 대한 비하가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게다가 당시에는, 천벌을 받아서 그런 장애를 가졌다고 생각하던 때입니다. 그러니 당시에는, 앞을 못 본다는 것만으로도 무시를 받고, 큰 죄를 저질렀을 거라 손가락질을 받고, 빌어먹는다고 외면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의 삶은 46절 끝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길 가에 앉은 듯한삶이었습니다. 길이란 사람이 지나가는 곳이어야 하지, 머물러 있을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지나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지 않도록 길가에 있어야 했고, 그곳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평생 모두에게 버림받고 외면 받은 것처럼 비참하게 살아가던 바디매오에게 기회가 왔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부르고, 도와달라고 할 때, 예수님은 많은 사람과 함께 여리고 지역을 막 떠나시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때가 아니었으면, 다시는 바디매오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뜻입니다. 바디매오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밖에 없는 이 때를 놓치지 않게 지혜롭게 깨닫고, 과감하게 행동하고, 간절하게 매달림으로써 문제를 해결받게 되었습니다.

 

바디매오는 소망이 끊긴 절망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고, 앞을 못 본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도움을 구할 사람도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길가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해도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괜찮은 날이라 하더라도, 고작해야 돈 몇 푼 더 얻고, 먹을 것 얻는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바디매오는 그런 경험이 많아서,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자기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조차 못 하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병자를 고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백 번 듣는 것보다는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처럼, 무엇보다도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지만 바디매오는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냥 과장된 이야기들, 지나가는 이야기로 흘리지 않고, 예수님의 신분과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무시와 꾸짖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부르고 도움을 구합니다. 지혜롭게 판단하고, 절박하게 결단하는 모습을 보면, 헛된 것에 힘쓰지 않고, 꼭 필요한 것에 매달릴 만큼 지혜롭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바디매오의 지혜와 절박함이 필요합니다. 영원히 살아갈 기회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간혹, 나중이라는 시간이 마땅히 뒤에 있을 거라 생각하며, 지금은 우리의 욕망과 욕심에 따라 사는 것도 괜찮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주님 앞에 나아와, 조용히 말씀을 듣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마지막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영생의 기회, 말씀의 기회가 더 이상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 오늘 하루, 이 자리의 예배, 이 말씀을 듣고, 흘려보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아들일 만한 지혜, 그리고 이 말씀을 끝까지 붙잡고 나아가고자 하는 절박한 결단과 굳은 다짐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가득하고, 다음 세상에서 영생하려면, 욕망의 감각에 따르지 말고,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영생을 향한 길로 방향을 정해야 하고, 우리를 도우시고 구원하실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하고, 주님이 말씀하신 그 길을 따라 살고자 하는 굳은 결심과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바디매오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많을 수도 있고, 더 심각하고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자신의 힘으로는 헤어날 수 없어서, 매일 실패하고,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영생의 구원자가 되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삼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간절히 매달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와 아픔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고, 더욱 복되게 살아가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 속에서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말고, 주님을 향해 삶의 방향을 돌리고, 간절히 구함으로써, 주님의 도우심으로 삶이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과 복을 받고 살아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