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히 보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
성경: 사무엘하 21장 1-14절(구 500쪽)
찬송: 406장(곤한 내 영혼 편히), 320장(나의 죄를 정케 하사)
설교: 20211010.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도쿄올림픽이 끝난 지 두 달 정도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들은 여러 종목에 참가하고 감동을 주었는데, 여자배구 종목도 그들 중 하나입니다. 4등을 해서, 3등까지는 받는 메달을 따지는 못 했습니다. 하지만 14위의 전력인 우리나라 팀이 4위를 차지해서,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세계 4위의 성적이 기대치보다 훨씬 좋은 결과인 또 다른 까닭이 있습니다. 능력이 좋은 두 선수가 함께 빠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6명이 동시에 뛰는 경기인데, 아주 중요한 자리의 두 선수까지 빠지게 되었으니,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실력이 좋음에도, 두 선수가 국가대표에서 제외된 이유가 있습니다. 두 선수는 쌍둥이 자매인데,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선수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은 아직 성장 중이고, 인격이 다듬어지지 못 할 때죠. 그래서 충동적으로 행동하고,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든 폭력이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늦게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용서받고,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으면, 올림픽에 참가하고, 또 크게 기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는,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받고, 화해하기보다는, 자기들은 그 정도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가대표에서 제외되었고, 팀에서도 쫓겨났습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운동할 수 없어서, 아주 어렵게 먼 외국으로 나가서 운동하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받은 대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 과정을 보면, 두 가지 가능성이 생각됩니다. 이처럼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사죄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그 선수들이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나? 피해자들이 혹 착각하거나 꾸며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해를 호소한 사람들이 여러 명이고, 또 아주 구체적이라, 그럴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그러면 다른 가능성은 한 가지뿐입니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과 폭언을 기억하지 못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이 일어난 일임에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많이, 또 구체적으로 기억합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피해를 입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는 대부분 기억하지 못 합니다. 장소와 시간과 방법은 물론, 자신이 가해자임을 기억하지 못 하곤 합니다. 기억한다 하더라도, 가해 흔적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이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피해자가 당한 아픔이 크고, 더불어 상처가 깊이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큰 공포로 자리 잡습니다. 깊이 파고든 만큼, 그 무엇으로도 지워지지도 않고, 무엇으로도 덮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려진다 하더라도, 깊은 상처를 남긴 피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반면에 가해자는 자신이 행한 폭력과 악행은 아픔이 아니기에 그 순간이 지나면 쉽게 사라집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당한 고통을 피해자보다 하나님은 더 깊이 기억하십니다. 피해자가 입은 상처와 고통을 하나님은 모두 보시고, 기억하십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에 대한 기억이 좀 희미해질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기록조차 사라질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기억하십니다. 피해자보다 더 기억하실 뿐만 아니라, 마땅하게 보응하십니다.
피해자가 억울하게 겪은 고통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 이를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오늘 본문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왕으로 있을 때로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만, 3년째 이스라엘에 큰 기근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이 제대로 먹지 못 해서, 엄청난 피해를 겪게 되었습니다. 요즘이야, 비축된 식량이 많아서, 웬만한 기근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또 여러 운송수단이 발달해서,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 올 수 있으니, 옛날처럼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는 고통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천 년 전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농사가 백성들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3년 연속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다윗은 믿음이 좋은 왕인지라, 이 일을 단순한 기근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징벌로 내리신 재앙으로 보고, 하나님께 이유를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집안사람들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까닭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이 가나안 지역을 하나씩 정복해 나아갑니다. 그곳에 있던 족속들 중 하나인 기브온 사람들은, 가까이에 있는 다른 부족들이 망하는 모습을 보고 두려워합니다. 가만히 있다 자신들도 망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꾀를 냅니다.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가장해서, 이스라엘의 종이 될 테니 해치지 말라고 요구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는 여기에 속아 화친을 맺습니다. 이 때문에 기브온 족속은, 이방민족으로서 이스라엘 민족이 멸망시키려 했지만, 새로운 언약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종청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강한 민족이 약하고 소수인 민족을 쫓아내거나 죽여 없애는 정책입니다. 여러 민족이 섞여 사는 나라에서 일어나곤 합니다. 그 과정이 기록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사울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사는 이방민족들을 없애는 작업을 펼칩니다. 다수를 차지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소수에 불과한 기브온 족속을 해쳤습니다.
하지만 기브온 민족은 더 이상 이방 민족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종이 되어 함께 살기로 했고, 서로 조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게 몇 년 산 게 아니라, 수백 년의 사사시대를 함께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이 나서서, 민족 청소를 한다며,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힘이 약해, 억울한 일을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빌붙어 사는 형편이니,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고, 맞서 싸울 만한 힘도 없습니다. 그렇게 조상들 사이에 맺은 조약을 깨뜨리고,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사울 왕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었습니다. 또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렇게 기브온의 아픈 역사와 고통이 묻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고, 보응하셨습니다. 하소연할 곳 없는 기브온의 아픔과 억울함 때문에, 이스라엘에 감당하기 어려운 큰 기근을 내리셨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함 때문에 하나님이 기근이 내리셨다는 사실을 다윗이 알고,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기브온 사람들에게 소원을 묻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돈으로 해결할 문제도 아니고, 상관없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이려 하지도 않는다며, 이 일의 책임자인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을 내주라고 요구합니다. 다윗도 어쩔 수 없이 이를 허락하고, 사울 왕의 후손 일곱 명이 처형된 후에야,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셔서 기근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크게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는, 다윗의 지혜와 결단입니다. 기근이 생기는 원인은 많습니다. 기온 때문일 수도 있고, 가뭄이나 홍수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농작물에 병충해가 생겨서일 수도 있고, 기술과 지식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기근의 원인을 얼마든지 다른 곳에서 찾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탓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 원인을 묻고, 하나님께로부터 답을 얻습니다. 다윗이 평소 무엇을 생각하며, 어디를 향해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했으며, 더불어 하나님이 백성들의 삶과 떨어져 있는 분이 아니라, 함께하시고, 들으시고, 심판하시는 분으로 믿으며 살았음이 잘 드러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그럼에도 사울 가문과 그 베냐민 지파가 가장 껄끄럽고 조심스럽습니다. 사울 왕은 그 죄와 어리석은 고집 때문에 왕조를 이어가지 못 하고, 전쟁 속에서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들인 사울 가문과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과 그 가족을 속이고 빼앗았다고 주장합니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으로서 40년이나 있었으니, 사울이 죽은 후에도, 그 영향력이 이스라엘 전체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수십 년 전에 있던 일 때문에, 사울 집안사람 7명을 기브온 민족에게 내준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윗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부분 사울 왕가를 청소하기 위해, 다윗이 일을 꾸며냈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재앙으로 알고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이를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뜻을 알고, 그에 따라 피해자의 호소를 듣고 응함으로써, 수십 년 계속되었던 응어리를 풀어주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대단한 이유고, 왕으로서도 높이 인정받는 이유입니다.
기브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배울 수 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 왕으로부터 언제 억울함을 당했는지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습니다. 또 다윗이 이를 알고 해결하는 시기 역시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왕으로 있던 일을, 다음 왕인 다윗이 해결했으니, 최소한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흐른 만큼,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사건을 잊었을 것입니다. 자기 민족이 저지른 악행인지라, 이를 되새기며 기억하고픈 사람은 없습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를 때까지 기브온 사람들은 억울함을 풀 길이 없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소수 민족인지라, 이스라엘에서 권력을 잡을 일도 없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당한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고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지나쳐도 괜찮은 일, 지나칠 만한 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이 악행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기근으로 보여주십니다. 기브온 민족을 억울하게 죽인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3년 동안 기근을 겪어야 할 정도로 크고 무서운 죄로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만 비로소, 고통과 슬픔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피해를 가하고, 고통을 안겨다 주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주십니다.
성경에는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또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이 아주 많습니다. 신명기 24장 17절에서는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명기 27장 19절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시편 146편 9절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이 말씀은 객과 고아와 과부처럼 피해자가 무조건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는 객과 고아와 과부와 이방인들은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대표했습니다. 이들에게는 보호해줄 방어막이 없습니다. 이방인과 객이라, 친하고 보호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고아라 지켜줄 부모가 없습니다. 남편이 없는 여인이라 함께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공평한 재판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하소연할 곳조차 없는 약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의 아픔과 슬픔마저 세세히 기억하십니다. 하소연할 곳 없고,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이들의 억울함을 하나님은 지나치지 않으시고,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특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은 본래 악을 향해 있는 존재인지라, 작은 힘과 기회만 있어도, 가해자가 되기 쉽습니다. 요즘 계속되고 있는 갑질, 가스라이팅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직급이 좀 높다고, 돈이 좀 많다고, 나이가 좀 많다고, 힘이 좀 세다며, 고통을 줍니다. 특히 피해자가 약할수록, 가난할수록 더 큰 고통을 줍니다. 그래도 되고, 그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해자에게는 삶을 포기하게 할 만큼 엄청난 고통입니다. 폭력과 폭언과 횡포는 그럴 수 있고, 그래도 괜찮은 일이 아니라, 얼마든지 살인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반드시 그 모든 과정과 억울함과 아픔을 기억하시며, 그에 대해 합당한 벌과 징계와 재앙을 내리심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 내뱉는 말과 행하는 모습 하나 하나가 우리 삶을 복과 고통으로 나눌 수 있는 출발점과 갈림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브온 사람들이 겪은 억울함을 수십 년이 지난 후 재앙으로 되갚으셨습니다. 그에 상응하는 징벌이 내려진 후에야 기근을 거두셨습니다. 소외된 이들의 억울함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주시는, 다윗의 신실함과 결단, 그리고 억울함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갚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엄격하심을 기억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삶을 풀어가며, 더불어, 삶에서 어떤 모양이라도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억울한 이들을 돕고 함께함으로써, 날마다 하나님의 보응을 복과 은혜와 평안으로 받고 사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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