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유익이 되는 일을 선택합시다
성경: 사무엘하 21장 10-22절(구 500쪽)
찬송: 436장(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524장(갈 길을 밝히 보이시니)
설교: 20211024. 주일낮예배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아온 여러분과 가정 위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복이 함께하시길 빕니다.
작년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발인하는 날 아침의 일입니다. 대학에 다니고 있는 조카 하나가 제게 와서, 영상으로 진행되는 수업을 들어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영상으로 수업을 들으려면, 이동용 컴퓨터가 있어야 하고, 영상을 받을 수 있는 데이터도 있어야 합니다. 이를 따로 준비하지도 못 했고, 장례가 진행 중이라 급하게 준비할 여건도 안 될 듯해서 어렵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조카의 질문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학교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면 해결됩니다. 하지만 마침 중간고사를 앞둔 때라서, 수업을 듣지 못 하면, 시험에 꼭 필요한 내용을 들을 수 없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급하게 오면서도,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해왔습니다.
다만 할아버지 발인과 화장이 치러지는 중에, 수업을 듣는 일이 도리에 맞느냐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한 분뿐이고, 마지막으로 보내드리는 절차 중에 있습니다. 장례가 고인을 보내드리는 마지막 절차로 여기며, 도리와 예법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수고와 노력을 많이 기울입니다.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도 최선을 다한다면, 하물며 할아버지의 장례에서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또 학생으로서 중요한 시험을 위해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기에, 어느 것도 포기하기 어려워 제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조카가 묻는 뜻을 알고 난 후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냥 어리게만 보았는데, 무엇이 도리에 어긋나는지를 고민하고, 어긋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기특해 보였습니다. 또 학생 신분으로서 학업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도 예뻐 보였습니다. 그리고 별로 고민하지 않고, 수업을 들으라 말해 주었습니다.
쉽게 답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분뿐인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내는 데에 예의와 도리를 다해야 하지만, 그러나 입관이나 발인예배를 드리는 시간도 아니고, 조카가 특별한 순서를 맡지도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심부름하는 데에 보내고 있고,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조카가 심부름하지 않아도, 장례가 진행되는 데 전혀 지장 없습니다.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이유도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는 지난 일이고, 수업을 듣는 과정은 앞날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례 절차를 아무리 멋지고, 예법에 맞게 치른다 하더라도 무엇도 바뀌지 않습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 살아나지 않고, 사후에 가야 할 곳이 달라지지도 않습니다. 장례를 잘 치러서 얻을 유익과 보상은 사실 없습니다. 유족들이 장례 절차를 아무리 멋지고, 화려하게 치른다 해도, 변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 합니다. 가장 큰 보상이라 해봤자, 사람들의 말뿐인 칭찬이 전부입니다. 아무 의미 없습니다.
하지만 학생으로서 지식은 꼭 필요할 뿐만 아니라, 앞날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큽니다. 간호학을 공부하고 있으니, 좀 더 멀리 보면, 사람을 돕는 데 꼭 필요합니다. 지금 공부하는 내용과 분량에 따라, 조카 자신의 미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까지 많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지금 잘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간호사가 되고, 더 많은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지금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 하면, 실수하기 쉽고, 무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공부를 허락한 이유입니다.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앞날을 바꿀 수 있는 지금에 더 노력해야 합니다. 이미 손쓸 수 없는 일에 힘을 쏟기보다, 의미 있고, 가치 있고, 유익한 일을 위해 애써야 합니다. 뒷걸음질이 반복되고 길어질수록 더 멀리 물러서게 되지만, 앞으로 향한 걸음이 반복될수록, 또 길어질수록 앞으로 더 많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날, 바꿀 수 있는 일에 힘쓸수록 성공하며, 복에 가까워집니다. 이미 지난 일, 바꿀 수 없는 일에 힘쓸수록 실패에 가까워지고,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 하는 빈털터리가 됩니다.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하는 게 아니라, 충분한 가치와 의미 있는 일을 위하지 않기 때문에 실패합니다.
두 가지 모습을 오늘 본문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먼저는, 10-14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3년 연속 기근이 들었습니다. 다윗 왕은 기도로 하나님께 여쭈었고, 앞선 왕인 사울이 기브온 족속 사람들을 억울하게 죽인 까닭이라는 답을 얻었습니다.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학살을 주도한 사울 왕가의 일곱 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주었습니다. 기브온 족속은 이들을 모두 목매어 달아 죽였습니다.
이때 죽은 이들 중에는, 리스바라는 여인의 두 아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왕의 첩이지만, 왕이 살아 있을 때나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울 왕은 죽은 지 오래되었고, 다윗의 왕위가 굳건하게 자리 잡았으니, 다른 여인과 다를 바 없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왕인 남편을 보내고 사는 과정도 험난한데, 어느 날 갑자기 수십 년 전의 일 때문에 자기 두 아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한 날 한 시에 잃게 되었습니다.
여인으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을 모두 겪었습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왕궁에서 쫓겨나 처량하게 사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두 아들이 직접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죽음에 내몰렸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 하고, 두 아들의 죽음을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두 아들이 기브온 사람들의 손에 죽은 후, 리스바는 처형장에 갔습니다. 처형된 시신은 맘대로 가져 가지도, 땅에 묻지도 못 하고 처형장에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 시신은 곧 부패하기 시작하죠. 게다가 시신을 땅에 묻지 않았으니, 날짐승이나 들짐승이 시신을 해치게 됩니다. 리스바는 자기 두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짐승들이 시신을 해치지 못 하도록 계속 지켰습니다. 그 기간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무려 6개월가량입니다. 본문 앞 9절을 보면, 처형된 때가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에서는 보리 수확하는 시기로서 4월 중순이나 하순입니다. 본문 10절에서 내린 비는, 성경에서 ‘이른 비’로 표현되는데, 보통 10월에 내리는 비를 뜻합니다.
아무리 젊고 건강한 사람도 죽으면 곧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죽은 지 6개월이나 지났으니,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심하게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들을 향한 사랑이 지극하다 하지만, 살았을 때의 이야기지, 죽고, 부패하기 시작하면, 보거나 가까이 하기조차 싫어합니다. 견디기 힘들 만큼 심한 악취가 풍기지 않았겠습니까?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을 리스바는 묵묵히 참고 견딥니다. 무려 6개월 이상 시신 곁에 머물러, 짐승들이 훼손하지 못 하도록 지켰습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크고 지극하다 하지만, 리스바의 사랑은 분명 더 크고 특별했습니다. 다윗 왕이 리스바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지역에 묻혀 있던 사울 왕과 요나단의 뼈를 가져와서, 리스바의 두 아들의 뼈를 함께 묻어주었습니다. 다윗 왕의 마음을 움직일 만큼 리스바의 사랑은 대단합니다.
리스바의 이야기 하나만 보면,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 혹은 어머니의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뒤 15절부터 블레셋의 거인들을 죽인 다윗과 함께했던 용사들의 이름과 행적이 간략하게 소개되었습니다. 처형당한 아들을 지키는 리스바의 지극한 사랑과 다윗과 함께한 용사들의 연결고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두 이야기를 별개로 보고, 따로 풀이할 수도 없습니다.
사무엘하서는 24장까지 있는데, 20장까지는 시간순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21장부터 24장까지는 시간에 따르지 않은 내용들입니다. 이후에 부록으로서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해석하기에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나 순서대로 오다, 갑자기 이전 내용을 덧붙였다면, 거기엔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무렇게나 덧붙일 수 없고, 꼭 필요해서, 또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속 두 이야기를 이어 기록해 놓은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어머니의 사랑이 이처럼 큰데, 하나님의 사랑은 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사실을 알려 주시고 있습니까? 그렇게 풀이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두 이야기 속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 풀이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두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모두 최고와 최선을 다했습니다. 리스바는 죽은 두 아들을 향해 더할 수 없는 사랑을 보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죽은 아들의 시신 곁에서 6개월가량을 머물며 지키는 수고는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를 해낸 리스바는,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뒤에 등장하는 다윗의 용사들도 최고와 최선을 다하긴 마찬가집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큰 적 중 하나가 블레셋입니다. 블레셋 족속이 강한 이유 중 하나는, 거인 장수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싸워 죽인 골리앗도 블레셋 사람입니다. 이후에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블레셋에는 거인 장수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다윗의 장수들이 물리쳤습니다.
장수들은 싸움을 잘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러나 칼과 창으로 싸우던 당시에는 무엇보다 힘이 중요했습니다. 덩치가 클수록 힘도 셉니다. 맞서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이를 보면, 거인을 상대해 이기려면, 다윗의 용사들은 죽을힘을 다해야 했습니다. 거인의 덩치에 주눅 들지 않고, 거인이 가진 무시무시한 무기와 엄청난 힘에 맞서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목적과 방향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입니다. 리스바는 아들들, 이미 죽은 이들을 지키는 데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어머니로서 아프고 애틋한 마음이야 이해되지만, 그렇게 6개월이 아니라, 60년을 산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죽은 아들은 돌아오지 못 합니다.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시신은 계속 썩어 점차 작아지고 없어집니다. 리스바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왕이 감동하고, 사울 왕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묻어 주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이를 보면, 리스바는 이미 지나 바꿀 수 없는 일에 힘을 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반드시 좋은 열매를 보장하지 못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문 15절부터 기록된 다윗의 용사들은 다릅니다. 이들도 목숨을 걸고, 다른 이들이 해낼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는 리스바와 같습니다만, 그러나 이들은 나라와 왕을 지키는 가치 있는 일, 생명을 지키고, 앞날을 유익하게 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통해, 죽음의 위기에 처한 다윗이 생명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이 다시는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전장에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왕으로서 민족과 백성들을 위해 수고할 수 있었고, 더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었습니다.
리스바와 다윗의 용사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향해 힘을 쏟고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익이 되고, 덕을 세우고, 생명을 지키고, 앞날에 도움이 되는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주어진 상황과 여건이 각자 다르지만, 그럼에도 지난날의 선택과 방향에 따라 지금의 형편과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선택과 방향에 따라 앞날의 모양과 내용이 달라집니다. 지금의 모습을 바꿀 수 있었던 지난날들을 이미 지나쳐 왔기에, 지금으로서는 바꿀 방법이 없습니다. 지난날들은, 아쉬움이든 만족이든, 원망과 미움이든, 감사와 사랑이든, 되돌릴 수 없으니, 뒤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앞날을 좌우하게 될 오늘을 지혜롭게 담대하게,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길로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시간,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들에 지나치게 집착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며 그 자리에 머물기도 합니다. 지난날에 나를 힘들게 하고, 피해를 끼쳤던 이들을 향한 분노로 주저앉기도 합니다. 지금의 형편을 불평하며, 더 이상 발걸음을 내디디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봤자 바뀌는 건 없습니다. 오직 앞날을 향해 지금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믿음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건전하고 건설적인 목표를 세우며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지금 바라는 바를 이루어 갈 수 있고, 거둘 것이 넘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본문 속에서, 리스바도 최선을 다했고, 다윗의 용사들도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럼에도 리스바는 마음의 위안과 인정 외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 했습니다. 더 정확히는 얻을 수 없는 노력이었습니다. 반면, 다윗의 용사들은, 살아도, 죽어도,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인정받고, 앞날이 약속된 수고와 노력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고하지 않아서 힘겨운 처지에 이른 게 아닙니다. 수고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들, 열매가 보장되지 않는 일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미 지나버린 날들에 대해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이제는 앞날을 향해, 더 나은 삶을 위해 수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앞날을 결정할 지금 이 시간에 수고하고, 건전하고, 가치 있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과 영생을 누리며, 더불어 이 땅에서도 더욱 복되고, 기쁨이 가득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비슷한 분량의 수고와 헌신을 기울였으나, 바른 목적을 향해 나아감으로써, 나라와 민족을 세우고, 더불어 자신들도 명예와 용기로 인정을 받은 용사들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지혜롭고 담대하게 앞을 향한 걸음을 내디딤으로써, 어제보다 오늘이 더 복되고, 오늘보다 내일의 삶이 기쁨과 기대로 가득한 삶을 살아 나아가는 자녀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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